Posted by 大山
Sun, 09 Jul 2006 08:23:00 GMT
지난 4월쯤이었나, 포스트모더니즘이 과연 뭘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 이유는 나중에 다른 글에서 다루기로 하고, 암튼 포스트모던이란 단어의 의미가 궁금해서 위키피디아도 뒤져보고, 구글도 뒤져보고, 사회학을 전공했던 동생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음 수학도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더라.
자신의 예술 및 역사에 대한 무지라는 개연성이 상당히 높은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는 급기야 포스트모더니즘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당위성의 관점에서 생각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1] 이러한 자유사고의 방식으로 전개된 고전, 모더니즘,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나의 이해에 대하여 한 번 기술해 보고자 한다. 참고로 사회학도였던 본인의 동생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딱히 심각한 반론을 제기하지는 않았다는 정도만 밝혀둔다. 도대체 어디서 읽은 얘기냐고 궁금해 하긴 하더라마는..
고전은 간단하다. 특별한 이론적 토대 없이 당장의 필요에 의해 하던 일들이 점점 고도화 되가는 과정에서 기교에 가득차 버린 상황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초상화의 경우 사진이 없던 과거에는 시간의 기록이라는 나름대로의 현실적 필요성에 의해 그리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초상화를 그리는 일이라는 직업이 생겨나자, 이런 화가들간의 우열을 가르는 기준이 필요하게 되었다. [2] 그러다보니 화가마다 다른 화가와는 구분되는 자신만의 특징을 발전시키게 되는데, 고전미술에서 기교가 많이 사용되는 이유이다.
이렇게 기교 위주로 예술이 발달하다 보니 점점 기교를 위한 기교가 늘어가게 된다. 점차 실용성에서 멀어져가는 이러한 예술은 결국 모순에 가득차 버린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모든 예술은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실행된다. 실용성을 잃어버린 예술은 그 자체로 모순일 수 밖에 없다.)
모더니즘은 이러한 모순에 대한 반발이다. 예술에서 불필요한 모든 기교를 빼버리고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을 남겨 놓은 것, 그것이 바로 모더니즘이다. 이 때문에 모던이란 단어에는 미니멀리즘이란 의미가 추가되기도 하였다. 모더니즘은 필연적으로 관념적이다. 이상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모순으로 가득 차 버린 현실에 대한 반발로 현실을 몇가지 이상으로 깔끔하게 규정지으려는 시도가 모더니즘인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이다. 너무 이상적인 시도들이 오히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반성이다. 기교를 위한 기교가 아니라 현실적 필요성에 기반한 기교라면 필요하다는 인정이 바로 포스트 모더니즘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 때문에 매우 실용적인 성향을 띈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것도 같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현실의 정확한 반영을 지향한다면 여기에 대한 반발이 있기 어렵지 않겠는가?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오늘날 한국의 정치 상황도 이런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민주주의는 일종의 모더니즘적 운동이었다. 두번의 민주당 정권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민주주의란 이상이 모든 문제를 저절로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실은 몇가지 이상으로 해결되기엔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상에 실용을 접목시킨 포스트모던적 정치세력이 점차 떠오르게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런 대안 세력이 빨리 생겨나지 않을때 한국사회는 허무주의에 빠져 혼란을 거듭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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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大山
Sun, 09 Jul 2006 06:18:00 GMT
사람들은 누구나 조금씩은 세상과 타협하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무턱대고 아무 것에나 타협하고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방식은 아닐 것이다. 타협에도 원칙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 번 해보았다.
어떤 이들은 비교적 일찍 주변과 타협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타협을 할 줄 몰라 불필요할 정도로 피곤한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조직이나 사회의 가치에 순응하고 수십년을 성실히 살아가다 어느날 갑자기 다음 세대로부터의 도덕적 비난에 직면하게 된 사람들이나 보다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 노력하다가 주변으로부터 '타협을 할 줄 모른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른다'는 등의 비난을 듣게 된 사람들이나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일 것 같다.
나는 무언가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때 종종 두가지 극단적인 경우를 상정하고 그 접점을 모색하는 방식의 사고를 즐겨하곤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사람의 목숨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나의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사람이 난치병에 걸린 나의 가족이라면 어떠한가? 그 사람이 내가 이름도 들어보지도 못한 가난한 아프리카 국가에 사는 에이즈에 걸린 한 매춘부라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가족의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 장기 이식이라도 서슴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한 매춘부를 위해서 천원 한장이라도 내놓을 사람들은 과연 몇명이나 있을까?
흔히 이러한 종류의 논의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논의 자체를 피해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는 이것이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논의가 활발할 때 우리는 자신의 가치관과 생존이라는 두가지 제약의 틀 속에서 자신만의 타협의 접점을 비로소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협의 점접을 찾아갈 기회가 없다면 우리는 종종 상황이나 주변의 압력에 밀려 원칙 없는 타협을 연달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로인해 형성되는 우리의 삶의 모습이 우리가 전혀 원치 않던 모습이라면 큰일이지 않은가.
학교에서 도덕시간에 가르쳐야 할 것은 '사람의 목숨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니다. 과연 나는 사람의 목숨이라는 소중한 것을 위해서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할 수 있을까라는 보다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바로 도덕 과목의 참된 역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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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大山
Fri, 07 Jul 2006 12:33:00 GMT
나야 오픈소스 개발자이긴 하지만 즐겨 찾는 윈도우 개발자 블로그가 두개 있다. 하나는 조엘 온 소프트웨어로 유명한 조엘의 블로그이고, 다른 하나는 Eric Sink의 블로그이다.
오늘 Eric이 협상에 관한 글을 하나 올렸는데 정곡을 찌르는 글인 것 같아 여기에 한 번 소개해 본다.
모든 계약에 있어 당신의 협상력은 계약이 성사되기를 원하는 당신의 바램과 정확히 반비례한다.
아이러니컬하지 않은가? 이 말은 당신이 반드시 따내길 원하는 계약일수록 협상의 결과는 당신에게 불리하게 나타난다는 말이다. 뒤집어 말하면, 당신이 그다지 강렬히 원하지 않는 계약에선 당신의 협상력이 극대화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걸 읽고 어떤이는 "나한테 중요하지도 않은 계약의 협상을 잘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중요한 계약이라도 그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을때 당신이 보게될 피해를 최소화시켜 놓으면 당신의 협상력은 그만큼 증대된다.
즉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을 때의 시나리오를 미리 만들어 놓고 준비해두면 그만큼 협상이 유리해 진다는 얘기이다. 여기까지는 Eric의 이야기였고, 나는 문득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번 해 보았다.
왜 우리는 종종 어떤 일을 성사시키는 것을 너무도 간절히 바라게 되는가? 어쩌면 그것은 일의 성사와는 관계 없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런 문제는 삶에서 조금이라도 일이 꼬이기 시작할 때 일어나는 것 같다. 시작은 사소할 수도 있다. 와이프가 동창회에 다녀 오더니 다른 친구들 남편들은 전부 잘나간다는데 당신은 이게 뭐냐고 한마디 한다. 자존심도 무척 상하고 해서 회사에서 빨리 인정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급한 마음에 일에서 무리수를 두다 실수를 연달아 하게 된다. 상사에게 일처리가 그게 뭐냐고 문책을 당한다. 만회하기 위해 자신이 담당하게 된 계약을 무리하게 추진한다. 나중에 계약이 잘못되어 오히려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치고 회사를 그만 두게 된다..
그냥 가상으로 한 번 적어본 얘기이지만 이런 일이 흔히 일어나는게 인생이 아닐까 싶다. 인생이 조금 꼬인다 싶을땐 한번에 역전시키려고 조급해하기 보다는 그냥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길게 보고 뚜벅뚜벅 나아가는게 정답일 듯.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협상력도 높아질 것 같다.
그리고 동창회 갔다 와서 친구들의 잘난 남편 얘길 늘어 놓을 사람과는 결혼하지 말아야 겠다. 안 그럴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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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大山
Fri, 09 Jun 2006 07:41:00 GMT
근면 못지 않게 창의가 강조되는 시대다.
근면은 주어진 일에 성실히 임하는 것이고, 창의는 그일을 왜해야 하는데 라고 되묻는 것이다. 근면은 공동체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고, 창의는 개인의 열정을 추구하는 것이다. 창의적인 사람은 개인주의적 성향을 보인다. 근면한 사람은 권위주의적 성향을 보인다. 창의적인 사람에게서는 열의를 엿볼 수 있다. 근면한 사람에게서는 끈기를 엿볼 수 있다.
공동체가 우선인 집단은 근면과 희생을 요구한다. 비전이 우선인 집단은 창의와 열정을 요구한다. 공동체가 우선인 집단에 속한 창의적인 사람은 게으르다는 비판을 받는다. 비전이 우선인 집단에 속한 근면한 사람은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물론 근면과 창의가 상충하는 개념만은 아니다. 창의적인 사람들만이 모여 있는 집단에서는 상대적으로 근면한 이가 돋보이게 마련이고, 근면한 사람들만이 모여 있는 집단에서는 상대적으로 창의적인 이가 돋보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착각하지는 말자. 근면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절대 가치는 근면이다.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절대 가치는 창의이다. 소속원 다수의 가치관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창의란 무엇인가? 창의란 다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기존과 다른 것은 모두 창의적인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다름을 불편해 한다. 익숙하지 않음을 두려워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창의적인 사람은 끊임 없이 다름을 추구한다. 자신이 남과 다른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사람은 나르시시스트이다.
그래서 애플 컴퓨터의 슬로건이 Think Different가 아니던가. 1997년 처음 방송되었던 Think Different 광고에는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이 나온다.
왜냐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미치광이들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어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꿔 볼 용기가 없거든 창의를 포기하고 공동체의 가치에 순응하라. 공동체의 가치에 순응할 자신이 없거든 세상을 바꿔 볼 용기를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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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大山
Wed, 07 Jun 2006 16:43:00 GMT
와니님의 열정이 부족한 이들이 너무 많다를 읽다가 필받아서 작년 이맘때쯤 동영상으로 보았던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졸업식 축사를 번역해 보았다.
여러분도 열정을 느끼는걸 찾아야만 합니다. 그건 연애 뿐만 아니라 일에도 적용되는 일입니다.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해서 둘러봐야만 합니다.
안타깝게도 주변을 보면 일뿐만 아니라 연애에서 조차 열정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종종 있는 것 같다. 돈이 많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학벌이 어느 이상 되면 스스로 잃을게 너무 많다고 믿게 되는 것일까? 아마도 그러한 이유때문에 돈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고 좋은 대학을 나와도 행복하지는 못한 사람이 많은 것이리라.
저는 우리가 머지 않아 곧 죽는다는 것을 되새겨보는 것 만큼 인생의 커다란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것들 — 남들의 기대, 자존심, 망신을 당하는 것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 이러한 것들은 죽음이란 단어 앞에 너무나 사소해져 버려서 우리가 정말로 중요한 것에 비로소 집중할 수 있게 해줍니다. 죽음의 순간을 떠올려 보는 것은 우리가 이미 잃을 것이 너무 많아서 어쩌면 조심조심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오류에 빠지지 않게 해줍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벌거벗고 사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로 불행한 일일 것입니다.
행복이란 용기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행복하기 위해 열정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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