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Posted by 大山 Sat, 03 Feb 2007 07:18:00 GMT

가끔 우리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신다. 7-80년대의 사람들은 다들 행복했는데, 요즘의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그 시대에는 사는게 힘들었을지언정, 다함께 발전하는 시기였다는 것이다. 재벌이든, 회사원이든, 자영업자건 모두들 소득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생활 수준이 개선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2000년대의 한국은 정체되어 있고, 더이상 다같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요즘의 행복은 마치 제로섬 게임이 되어버린 느낌.

내 생각에 행복이란 이루기 힘든 높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무엇을 하든 내가 발전하기만 한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무엇인가를 더 잘하게 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즐겁기 때문이다. 그게 프로그래밍이든, 글쓰기든, 공부든, 사업이든. 중요한 것은 인생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내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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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경제론 2

Posted by 大山 Sat, 04 Nov 2006 08:58:00 GMT

[참고: 이 글은 길목경제론에 이어지는 시리즈임.]

길목을 차지하는 경쟁은 무척이나 치열하다. 길목이 곧 돈이기 때문이다. 명동에서 목이 좋은 곳에 자리잡은 노점상은 자릿세만도 1억원에 달한다고 하지 않는가.

인터넷에서 길목을 차지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길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새로운 길이 생겨나면, 길목의 가치는 길을 소유한 사람이 차지하기 마련이다. 구글은 이처럼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웹브라우저에서 내가 원하는 웹 페이지로 찾아가는 길)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고, 다들 알다시피 구글을 이 길목에서 조그마한 전단지를 뿌리는 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다들 무언가 유용한 정보를 찾아다니기 마련이다. 어떤 길에서 누군가 자신이 필요로하는 정보를 지속적으로 찾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계속해서 그 길을 지나다닐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이트든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면, 곧 하나의 길을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길을 만든다는 것은 곧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다.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다. 웹에서 개인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아마도 블로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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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경제론

Posted by 大山 Fri, 13 Oct 2006 13:01:00 GMT

언젠가부터 Attention Economy란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는데, 우리말 번역어인 '주목경제'란 표현도 조금은 어색한 느낌이고, 보다 보편적이고 쉬운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이란 생각이다.

장사에서 물건을 많이 팔려면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좌판을 벌이고 있어야 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이끄는 곳에 있어야 물건을 많이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길목을 차지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돈이 된다. 그래서 노점상에도 자릿세가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길목이 반드시 물리적인 장소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곳은 모두 비슷한 효과를 가지게 된다. 9시 뉴스시간의 TV 광고 시간, 일간지 1면의 광고면 또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훌륭한 길목이다. 당연히 이곳에도 광고비란 이름의 자릿세가 존재한다.

인터넷 쪽을 한번 살펴보면, 네이버나 구글의 수익모델 또한 자릿세 모델이다. 이들은 웹검색이란 길목을 차지하고, 그곳에 광고를 걸어주는 조건으로 자릿세를 받는다.

길목을 차지하는 것이 돈이 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주로 지나다니는 길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길목은 제한된 자원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흔히 말하는 '주목경제'란 이처럼 한정된 길목을 어떻게 차지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라고 할 수 있다.

관련글: 길목경제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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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균형

Posted by 大山 Thu, 07 Sep 2006 10:14:00 GMT

삶을 효과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잘해야 하는 것 같다. 첫째는 스스로를 지킬 줄 아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을 버릴 줄 아는 것이다.

스스로를 지킨다는 것은 자신만의 빛깔을 잃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순간 삶의 의미는 그만큼 퇴색되어 버리기 쉽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색깔을 흐리게 하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뚜렷한 색은 다른 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내기 쉽다.

색을 흐리면서도 고유의 빛깔을 잃지 않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이래저래 삶은 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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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와 무엇을 따라할 것인가

Posted by 大山 Wed, 09 Aug 2006 15:35:00 GMT

남을 따라하는 것도 사실 중요한 전략이다. 살면서 생기는 모든 문제를 항상 스스로 고민해서만 해결하려 하면, 골치가 너무 아파진다. 게다가 언제나 필요한 정보가 충분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문제는 누구를 따라하고, 무엇을 따라할 것이냐에 있다. 핀트가 어긋나서 엉뚱한 것을 따라하는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이 글에서는 누구를 따라할 것인가와, 무엇을 따라할 것인가에 대한 나의 생각을 한 번 정리해 보고자 한다.

누구를 따라할 것인가

누구를 따라할지 선택하는 일은 사실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기본적으로 자신과 성격이나 기질이 비슷한 사람들 중에서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따라해야 한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주변에 없는 경우도 많다는데 있다.

역할 모델이 없는 삶은 상당히 피곤하다. 시행착오를 거쳐서 모든 것을 스스로 배워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인생을 소극적인 자세로 살아가게 될 위험성도 있다. 가능하면 다양한 만남을 통해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많이 알아가는게 좋다.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을 알아가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 되겠다.

무엇을 따라할 것인가

사실 따라할 것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따라하지 말아야 할 것을 골라내는 편이 더 쉽다. 살면서 열심히 관찰하다보니, 따라하지 말아야 할 것을 골라내는 나름대로의 규칙이 생기더라. 지금까지 내가 발견한 규칙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어려운 문제일수록 다수가 선호하는 선택은 틀릴 확률이 높다.
  2. 어릴적에 읽은 위인전에는 따라할 것이 없다.
  3. 상관관계가 곧 인과관계인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겉모습을 따라하는 것은 거의 언제나 무의미하다.
  4. 어떤 이유에서든 후회할만한 선택은 무조건 배제한다.

남아 있는 옵션들 중에서 나는 마음 가는대로 결정하는 편이다. 다만 한참을 고민하다 보면, 처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옵션이 생겨나기도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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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적인 협업

Posted by 大山 Tue, 01 Aug 2006 14:57:00 GMT

회사에서 업무를 진행하다 보면, 다른 사람과 협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피부로 절감하게 된다. 사람의 성격 유형만 해도 16가지로 나누어 지고[1], 개인마다 담당하는 업무가 서로 다르다 보니, 여러 사람이 서로 오해없이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것 부터가 쉬울 리가 없다.

웹 개발 프로젝트를 예로 들어, 기획자 1명, 개발자 1명, 디자이너 1명이 같은 프로젝트에 투입됐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프로젝트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기 쉬운데, 가장 커다란 이슈 중 하나는 업무의 분배에 있다. 우선 프로젝트 내의 업무가 영역별로 1/n로 나누어 떨어질 리가 없다. 시기에 따라 일이 몰리는 분야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절대 업무량이 균등하지 않은 경우가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기획 업무에는 1명이 아니라 1/2명만 필요한 식이다.

업무량이 많다고 해서 꼭 기여도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업무량이 적다는 것 또한 팀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쉽다. 팀 내의 역학관계는 업무량에 의해 좌우되기 쉽기 때문에, 업무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은 팀 내의 정치적 구도에 민감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많은 팀을 들여다 보면, 실질적인 업무량과 상관없이 모두가 비슷하게 바쁜 경우가 많다. 어짜피 똑같이 바쁠 것이라면, 실제의 업무량도 비슷하게 맞추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업무량을 비슷하게 맞추고 협업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개개인의 전문성을 확장시키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업무 영역이 넓어지면, 서로간의 업무가 중첩되는 부분이 많아지게 되는데, 이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첫째, 그만큼 개개인의 업무간의 간격이 좁아지기 때문에, 서로의 업무를 잘 이해하게 된다. 둘째, 중첩되는 업무 영역은 마치 버퍼와도 같아서, 필요시 업무의 이전이 손쉽게 이루어질 수 있게 된다. 셋째, 실제로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인원의 수가 줄어들게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효과는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사람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다. 각종 아이디어와 데이타가 여러 사람의 머리를 넘나드는 일은 얼마나 오버헤드가 많이 발생하는 일인가. 실제로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사람이 한 명 늘어날 때마다 커뮤티케이션 오버헤드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2] 이 때문에 가능하면 많은 의사결정이 적은 수의 사람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효율적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디자인 감각이 뛰어나고 기획 경험이 풍부한데다 프로그래밍 능력마저 출중한 개발자가 있다고 한 번 가정해 보자. 아무리 팀워크가 우수한 팀이라 하더라도 이런 개발자 한명과 경쟁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특히 의사결정의 속도가 중요한 프로젝트라면, 경쟁 자체가 아예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게 되면, 효과적인 협업이 가능해질 뿐더러, 개인의 경쟁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것이다.

  1. MBTI 이론에 따르면 사람의 성격은 16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2. 브룩스의 법칙에 따르면, "지연된 프로젝트에 인력을 새로 투입하는 것은 프로젝트를 더욱 지연시킬 뿐이다." 추가로 투입된 인원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오버헤드가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n명이 투입된 프로젝트에 인원에 한명이 더 추가되면 커뮤니케이션 링크는 n개가 더 증가하고 그만큼 오버헤드가 늘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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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선택은 위험하다

Posted by 大山 Thu, 20 Jul 2006 08:24:00 GMT

어릴적에 부모님이 입시학원을 운영하셨기 때문에 나는 한국의 입시제도를 비교적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다. 내게 흥미로웠던 점은 거의 매 해마다 인기학과가 바뀐다는 것, 그리고 보통 입학한 사람이 졸업할 때까지 그 인기가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우수한 이과 학생들이 의대로 많이 진학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이공계로 진학한 후배가 다시 의대로 입학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들이 과연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미 한국에는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 현재의 의사 양성 시스템은 의료 인력이 매우 부족했던 7-8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고 그렇다면 현재 시점에는 의사가 필요보다 많이 양성되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의대의 정원을 조정했어야 했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지는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이 인기 학과에 몰리는 것은 그것이 안전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이 다 선호하는 학과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법도 싶다. 하지만 군중적 사고는 이성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사실 입시에서 인기 학과가 형성되는 것은 학생들의 생각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식의 입시 결과에 따라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받는 부모들 때문일 것이다.

현대사회는 경쟁사회이고, 경쟁사회는 필연적으로 부의 편중을 초래한다. 경쟁의 결과에 따라 부가 분배되기 때문에 모두들 경쟁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갈수록 편중의 정도가 심해지고 있고, 이제 중간 만큼의 성공은 실패나 마찬가지가 되어 버렸다. 중간이나 그 이하나 큰 차이가 없어진 것이다. 그런데 안전한 선택만 해서는 결코 평균 이상의 성공을 이뤄낼 수가 없다.

안전한 선택이 언제나 잘못된 전략이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높아 모두 다 같이 발전하던 때에는 중간만 가도 어느 정도의 성공을 이룰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선진국의 그것 만큼이나 낮아져 버렸다. 중간만 가면 아무 발전을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안전한 선택은 이제 너무 위험한 전략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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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사업의 세 가지 수익모델

Posted by 大山 Wed, 19 Jul 2006 14:25:00 GMT

사실 상당히 오래 전의 생각이긴 한데 최근의 웹 2.0 이슈도 있고 해서 블로그에 다시 한번 정리해 본다.

인터넷 사업에는 크게 세 가지 수익모델이 존재한다. 첫번째 모델은 마켓 플레이스(Market Place)를 제공하고 그 사용에 대한 세금을 징수하는 방식으로 가장 대표적인 사이트는 이베이(eBay)이다. 두번째 모델은 마켓 플레이스를 제공하고 거기에 업혀 다른 사업을 하는 방식으로 아마존(Amazon)이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방식이다. 마지막 모델은 외부의 마켓 플레이스에 대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하고 그것에 업혀가는 방식인데 바로 구글의 수익모델이 이것이다.

이베이는 중고 물건의 경매가 이루어지는 사이트로 경매 낙찰가의 일부를 수수료로 징수하고 있다. 경매의 경우 한 번 시장이 형성되고나면 후발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온라인 경매에 관한한 이베이의 독점은 가히 완벽하다고 할 수 있겠다.

만약 판매자가 다른 경매 사이트에 물건을 내놓는다면 훨씬 적은 수의 잠재 구매자로 인해 낙찰가가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이로인해 이베이에서 사용자의 이탈이 발생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며, 모든 경매 참여자는 이베이에 락인(lock-in)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도 이베이가 심각한 전략적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한 이런 독점은 영원히 지속될 수 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이베이는 리스크 없는 안정적인 사업을 영구적으로 보장받았다고 볼 수 있겠다.

아마존은 원래 온라인으로 책을 판매하는 사이트였다. 아마존은 사용자가 책에 대한 독서평을 쓰게 하고 그 정보를 취합해 전체 사용자에게 다시 제공한다. 이 서비스를 통해 아마존은 책 소비자들이 모여 책에 관한 정보를 주고 받는 도서 정보의 마켓 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아마존에서 취합 제공되는 이런 정보를 통해 원하는 책을 찾게된 사용자는 보통 아마존에서 해당 도서를 구매하게 된다.

아마존이 막 뜨기 시작했을 무렵 미국의 최대 오프라인 서점 체인인 Barnes & Nobles는 아마존과 거의 동일한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문제는 이미 아마존 사이트에서 도서 정보 교환의 마켓 플레이스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도 Barnes & Nobles 사이트에는 독서평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편리함 때문에 원하는 도서를 찾은 후엔 항상 아마존에서 책을 구매했으며, 아마존은 이를 바탕으로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사이트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아마존은 사용자들이 제품 정보를 교환하는 마켓 플레이스이며, 전자상거래는 이에 업혀가는 수익모델일 뿐인 것이다. 이론적으로 사용자는 아마존에서 정보를 확인하고, 다른 곳에서 물건을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불편하기도 할 뿐더러, 아마존의 제품 가격이 저렴한 편이기 때문에 보통의 소비자는 아마존에서 물건을 구매하게 된다.

웹은 그 자체가 이미 커다란 마켓 플레이스이다. 전세계 수억명의 사람들이 웹을 통해 정보를 제공하고 또한 소비한다. 어느 단체도 웹이라는 마켓 플레이스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따라서 이러한 외부 마켓 플레이스를 사업에 활용하려면, 여기에 어떠한 부가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한다.

구글은 웹이라는 마켓 플레이스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정보를 정확히 찾아주는 검색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를 위해 구글은 웹의 링크 구조 정보를 분석해서 활용하며, 구글의 수익모델은 검색 결과 페이지에 보여지는 키워드 광고이다.

웹의 링크 구조를 검색에 처음으로 활용한 것은 구글이지만, 비슷한 알고리듬을 누구나 만들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현재의 모든 메이저 검색 사이트는 구글과 비슷한 수준의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구글의 최대 고민은 앞으로 사용자의 이탈을 막을 수 있는 어떠한 실질적인 안전장치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마켓 플레이스를 소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글의 검색 서비스는 웹이라는 대규모의 마켓 플레이스에 업혀가고 있기 때문에 그 수익의 규모 또한 엄청나나, 이러한 수익모델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그 기반이 취약하다. 아직까지 구글은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여기서 소개한 세개의 회사 중, 구글의 미래가 가장 불투명하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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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성공과 약점

Posted by 大山 Mon, 17 Jul 2006 00:48:00 GMT

미국은 현시점에서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국가이다. 누구나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왜 그런지에 대한 논의는 별로 없는 듯 하다. 미국의 현재를 논하려는게 아니라 왜 미국은 현재와 같이 될 수 있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 한다. 역사적 배경을 생략한 현재에 대한 논의는 별 의미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첫째로 미국은 근대 역사에 드물게 완전히 새로 만들어진 국가이다. 비어 있던 아메리카 대륙에 유럽 이민자들이 정착하여 새로운 국가를 설립했다. 요즘으로 치면 마치 벤처 회사를 차린 것과 같은 것이다. 회사에 근무해본 사람이라면 기존의 조직을 개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기존 사람들의 삶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을 갑자기 뒤흔들려 할때 반발이 거세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면 차라리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편이 낫다. 미국은 이처럼 완전히 새로운 실험을 해볼 수 있는 일종의 벤처 국가였다.

둘째로 미국은 자원이 풍족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듯 하다. 미국인들조차 미국을 축복받은 나라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마지막으로는 이민 정책을 꼽을 수 있다. 유럽이 1, 2차 세계 대전을 겪을때 대다수의 이공계 학자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렸다. 미국이 곧 모든 연구활동의 중심지가 되어 버렸고, 오늘날에도 연구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풍족한 자원에 최고의 인재, 그리고 발목을 잡을 과거의 부재. 성공을 위한 완벽한 조건이 아닌가?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미국은 완벽한 국가처럼 보이며 그 미래가 흔들리지도 않을 것만 같다.

그런데 나는 예전부터 마이크로소프트사와 미국간에 너무도 분명한 유사점이 보이기 시작하더라. 마이크로소프트사도 벤처로 시작했고, 엄청난 자원(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십여년이 넘게 컴퓨터 분야의 최고 인재들을 싹쓸어 가다시피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이제 흔들리고 있다. 아직까지도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회사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 기반이 이전처럼 튼실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미 불안감을 느끼는 투자자들은 R&D에 대한 투자보다는 배당금을 원하며 많은 인재들이 마이크로소프트를 빠져 나가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마이크로소프트사에 대해 도덕적 잣대를 들어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스스로의 힘을 통제할 능력을 잃어버렸을 뿐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 역시 상장 회사이기 때문에 항상 주주로부터 이익에 대한 압력을 받는다. 일반 IT 회사들은 이러한 주주의 기대를 기술 혁신을 통해 이루어 내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스스로 가지고 있는 힘이 너무 크다. 조금 언짢은 목소리만 내도 주변에서 알아서 눈치를 보는데 힘들게 기술 혁신을 이루어 내려고 하겠는가?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란 말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발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언제나 더 쉬운 방법이 도처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인 삼성이 왜 가장 부도덕한 경영 행태를 보이는지 궁금해해 본적이 있는지? 동일한 이유이다. 더 쉬운 방법이 있고,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성공적인 기업이 다 스스로의 힘에 대한 통제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경영진이 엄격한 도덕성으로 무장된 기업은 그렇지 않기도 한 것 같다. 오랜 역사를 가진 성공적인 기업들도 수없이 존재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이미 오래 전에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렸으며, 미국도 점차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유명한 석학인 노암 촘스키는 최근의 저서 실패한 국가들(Failed States)에서 미국이 국제 사회에 가장 위협적인 실패한 국가로 전락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몰락하고 있다고 해도 나는 사실 별로 걱정스럽지 않다. 이미 오픈소스가 더 나은 대안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대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물론 그것이 중동의 테러리스트 단체는 아닐 것 같다. 해답을 아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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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이란 무엇인가?

Posted by 大山 Wed, 12 Jul 2006 15:02:00 GMT

나는 어릴적에 추상이란 그냥 어렵고 모호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피카소의 그림이 추상적이란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그냥 어렵고 난해한 그림을 추상화라고 부르는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언젠가 추상이란 개념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추상이 인간의 사고과정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추상(抽象)을 한자로 보면 '뽑아낼 추'와 '코끼리 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象)은 모양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한자를 풀이해 보면 '모양을 뽑아내는 것'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즉, 추상이란 실제하는 사물에서 어떠한 특징만을 뽑아내는 과정을 말한다. 이때 뽑아진 특징을 우리는 추상적이라고 부르게 된다.

피카소의 그림으로 돌아가보자. 피카소는 자신이 본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았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특징은 강조하고 자신이 중요치 않게 여기는 디테일을 과감히 생략했다. 사물에서 특정 요소만을 뽑아내서 그렸기 때문에 피카소의 그림은 추상화인 것이다.

반대로 사진은 추상적이지 않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이 구체적이라고 말한다. 추상적이냐 구체적이냐는 물론 정도의 차이인 측면도 있다. 어떤 그림은 보다 더 추상적이고 어떤 그림은 보다 더 구체적이다.

추상이 예술에서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추상이 가장 중요시 되는 분야는 과학이다. 뉴턴은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관찰하며 중력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사과의 낙하란 구체적인 사건에서 하나의 특징인 모든 사물은 서로 잡아당긴다는 법칙을 뽑아낸 것이다. 따라서 중력은 추상적이다. 실제로 과학은 자연의 중요한 특징을 발견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과학이론은 언제나 추상적일 수 밖에 없다.

과학자나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 추상적 사고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비가 오는날 빨래를 했더니 잘 안마른다라든가 신용카드를 많이 쓰면 저축하기가 어렵더라는 사실은 우리의 추상적 사고과정의 결과물인 것이다. 추상은 일상의 구체적인 경험 속에서 우리가 의미 있는 패턴을 발견하게 해주는 두뇌의 한 작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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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짧은 생각

Posted by 大山 Sun, 09 Jul 2006 08:23:00 GMT

지난 4월쯤이었나, 포스트모더니즘이 과연 뭘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 이유는 나중에 다른 글에서 다루기로 하고, 암튼 포스트모던이란 단어의 의미가 궁금해서 위키피디아도 뒤져보고, 구글도 뒤져보고, 사회학을 전공했던 동생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음 수학도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더라.

자신의 예술 및 역사에 대한 무지라는 개연성이 상당히 높은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는 급기야 포스트모더니즘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당위성의 관점에서 생각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1] 이러한 자유사고의 방식으로 전개된 고전, 모더니즘,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나의 이해에 대하여 한 번 기술해 보고자 한다. 참고로 사회학도였던 본인의 동생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딱히 심각한 반론을 제기하지는 않았다는 정도만 밝혀둔다. 도대체 어디서 읽은 얘기냐고 궁금해 하긴 하더라마는..

고전은 간단하다. 특별한 이론적 토대 없이 당장의 필요에 의해 하던 일들이 점점 고도화 되가는 과정에서 기교에 가득차 버린 상황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초상화의 경우 사진이 없던 과거에는 시간의 기록이라는 나름대로의 현실적 필요성에 의해 그리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초상화를 그리는 일이라는 직업이 생겨나자, 이런 화가들간의 우열을 가르는 기준이 필요하게 되었다. [2] 그러다보니 화가마다 다른 화가와는 구분되는 자신만의 특징을 발전시키게 되는데, 고전미술에서 기교가 많이 사용되는 이유이다.

이렇게 기교 위주로 예술이 발달하다 보니 점점 기교를 위한 기교가 늘어가게 된다. 점차 실용성에서 멀어져가는 이러한 예술은 결국 모순에 가득차 버린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모든 예술은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실행된다. 실용성을 잃어버린 예술은 그 자체로 모순일 수 밖에 없다.)

모더니즘은 이러한 모순에 대한 반발이다. 예술에서 불필요한 모든 기교를 빼버리고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을 남겨 놓은 것, 그것이 바로 모더니즘이다. 이 때문에 모던이란 단어에는 미니멀리즘이란 의미가 추가되기도 하였다. 모더니즘은 필연적으로 관념적이다. 이상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모순으로 가득 차 버린 현실에 대한 반발로 현실을 몇가지 이상으로 깔끔하게 규정지으려는 시도가 모더니즘인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이다. 너무 이상적인 시도들이 오히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반성이다. 기교를 위한 기교가 아니라 현실적 필요성에 기반한 기교라면 필요하다는 인정이 바로 포스트 모더니즘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 때문에 매우 실용적인 성향을 띈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것도 같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현실의 정확한 반영을 지향한다면 여기에 대한 반발이 있기 어렵지 않겠는가?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오늘날 한국의 정치 상황도 이런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민주주의는 일종의 모더니즘적 운동이었다. 두번의 민주당 정권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민주주의란 이상이 모든 문제를 저절로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실은 몇가지 이상으로 해결되기엔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상에 실용을 접목시킨 포스트모던적 정치세력이 점차 떠오르게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런 대안 세력이 빨리 생겨나지 않을때 한국사회는 허무주의에 빠져 혼란을 거듭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1. 과학과 구분되는 수학의 아름다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실질적인 (역사적 또는 실험적) 데이타 없이 단지 관념적인 방법만으로도 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자유 말이다.
  2. 사람이 하는 모든일에는 우열을 구분하는 작업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이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계급을 정하는 것을 좋아하는 동물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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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의 원칙

Posted by 大山 Sun, 09 Jul 2006 06:18:00 GMT

사람들은 누구나 조금씩은 세상과 타협하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무턱대고 아무 것에나 타협하고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방식은 아닐 것이다. 타협에도 원칙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 번 해보았다.

어떤 이들은 비교적 일찍 주변과 타협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타협을 할 줄 몰라 불필요할 정도로 피곤한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조직이나 사회의 가치에 순응하고 수십년을 성실히 살아가다 어느날 갑자기 다음 세대로부터의 도덕적 비난에 직면하게 된 사람들이나 보다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 노력하다가 주변으로부터 '타협을 할 줄 모른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른다'는 등의 비난을 듣게 된 사람들이나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일 것 같다.

나는 무언가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때 종종 두가지 극단적인 경우를 상정하고 그 접점을 모색하는 방식의 사고를 즐겨하곤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사람의 목숨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나의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사람이 난치병에 걸린 나의 가족이라면 어떠한가? 그 사람이 내가 이름도 들어보지도 못한 가난한 아프리카 국가에 사는 에이즈에 걸린 한 매춘부라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가족의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 장기 이식이라도 서슴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한 매춘부를 위해서 천원 한장이라도 내놓을 사람들은 과연 몇명이나 있을까?

흔히 이러한 종류의 논의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논의 자체를 피해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는 이것이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논의가 활발할 때 우리는 자신의 가치관과 생존이라는 두가지 제약의 틀 속에서 자신만의 타협의 접점을 비로소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협의 점접을 찾아갈 기회가 없다면 우리는 종종 상황이나 주변의 압력에 밀려 원칙 없는 타협을 연달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로인해 형성되는 우리의 삶의 모습이 우리가 전혀 원치 않던 모습이라면 큰일이지 않은가.

학교에서 도덕시간에 가르쳐야 할 것은 '사람의 목숨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니다. 과연 나는 사람의 목숨이라는 소중한 것을 위해서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할 수 있을까라는 보다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바로 도덕 과목의 참된 역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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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과 라이프 스타일

Posted by 大山 Fri, 07 Jul 2006 12:33:00 GMT

나야 오픈소스 개발자이긴 하지만 즐겨 찾는 윈도우 개발자 블로그가 두개 있다. 하나는 조엘 온 소프트웨어로 유명한 조엘의 블로그이고, 다른 하나는 Eric Sink의 블로그이다.

오늘 Eric이 협상에 관한 글을 하나 올렸는데 정곡을 찌르는 글인 것 같아 여기에 한 번 소개해 본다.

모든 계약에 있어 당신의 협상력은 계약이 성사되기를 원하는 당신의 바램과 정확히 반비례한다.

아이러니컬하지 않은가? 이 말은 당신이 반드시 따내길 원하는 계약일수록 협상의 결과는 당신에게 불리하게 나타난다는 말이다. 뒤집어 말하면, 당신이 그다지 강렬히 원하지 않는 계약에선 당신의 협상력이 극대화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걸 읽고 어떤이는 "나한테 중요하지도 않은 계약의 협상을 잘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중요한 계약이라도 그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을때 당신이 보게될 피해를 최소화시켜 놓으면 당신의 협상력은 그만큼 증대된다.

즉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을 때의 시나리오를 미리 만들어 놓고 준비해두면 그만큼 협상이 유리해 진다는 얘기이다. 여기까지는 Eric의 이야기였고, 나는 문득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번 해 보았다.

왜 우리는 종종 어떤 일을 성사시키는 것을 너무도 간절히 바라게 되는가? 어쩌면 그것은 일의 성사와는 관계 없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런 문제는 삶에서 조금이라도 일이 꼬이기 시작할 때 일어나는 것 같다. 시작은 사소할 수도 있다. 와이프가 동창회에 다녀 오더니 다른 친구들 남편들은 전부 잘나간다는데 당신은 이게 뭐냐고 한마디 한다. 자존심도 무척 상하고 해서 회사에서 빨리 인정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급한 마음에 일에서 무리수를 두다 실수를 연달아 하게 된다. 상사에게 일처리가 그게 뭐냐고 문책을 당한다. 만회하기 위해 자신이 담당하게 된 계약을 무리하게 추진한다. 나중에 계약이 잘못되어 오히려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치고 회사를 그만 두게 된다..

그냥 가상으로 한 번 적어본 얘기이지만 이런 일이 흔히 일어나는게 인생이 아닐까 싶다. 인생이 조금 꼬인다 싶을땐 한번에 역전시키려고 조급해하기 보다는 그냥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길게 보고 뚜벅뚜벅 나아가는게 정답일 듯.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협상력도 높아질 것 같다.

그리고 동창회 갔다 와서 친구들의 잘난 남편 얘길 늘어 놓을 사람과는 결혼하지 말아야 겠다. 안 그럴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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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와 근면에 관하여

Posted by 大山 Fri, 09 Jun 2006 07:41:00 GMT

근면 못지 않게 창의가 강조되는 시대다.

근면은 주어진 일에 성실히 임하는 것이고, 창의는 그일을 왜해야 하는데 라고 되묻는 것이다. 근면은 공동체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고, 창의는 개인의 열정을 추구하는 것이다. 창의적인 사람은 개인주의적 성향을 보인다. 근면한 사람은 권위주의적 성향을 보인다. 창의적인 사람에게서는 열의를 엿볼 수 있다. 근면한 사람에게서는 끈기를 엿볼 수 있다.

공동체가 우선인 집단은 근면과 희생을 요구한다. 비전이 우선인 집단은 창의와 열정을 요구한다. 공동체가 우선인 집단에 속한 창의적인 사람은 게으르다는 비판을 받는다. 비전이 우선인 집단에 속한 근면한 사람은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물론 근면과 창의가 상충하는 개념만은 아니다. 창의적인 사람들만이 모여 있는 집단에서는 상대적으로 근면한 이가 돋보이게 마련이고, 근면한 사람들만이 모여 있는 집단에서는 상대적으로 창의적인 이가 돋보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착각하지는 말자. 근면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절대 가치는 근면이다.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절대 가치는 창의이다. 소속원 다수의 가치관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창의란 무엇인가? 창의란 다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기존과 다른 것은 모두 창의적인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다름을 불편해 한다. 익숙하지 않음을 두려워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창의적인 사람은 끊임 없이 다름을 추구한다. 자신이 남과 다른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사람은 나르시시스트이다.

그래서 애플 컴퓨터의 슬로건이 Think Different가 아니던가. 1997년 처음 방송되었던 Think Different 광고에는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이 나온다.

왜냐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미치광이들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어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꿔 볼 용기가 없거든 창의를 포기하고 공동체의 가치에 순응하라. 공동체의 가치에 순응할 자신이 없거든 세상을 바꿔 볼 용기를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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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Posted by 大山 Wed, 07 Jun 2006 16:43:00 GMT

와니님의 열정이 부족한 이들이 너무 많다를 읽다가 필받아서 작년 이맘때쯤 동영상으로 보았던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졸업식 축사를 번역해 보았다.

여러분도 열정을 느끼는걸 찾아야만 합니다. 그건 연애 뿐만 아니라 일에도 적용되는 일입니다.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해서 둘러봐야만 합니다.

안타깝게도 주변을 보면 일뿐만 아니라 연애에서 조차 열정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종종 있는 것 같다. 돈이 많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학벌이 어느 이상 되면 스스로 잃을게 너무 많다고 믿게 되는 것일까? 아마도 그러한 이유때문에 돈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고 좋은 대학을 나와도 행복하지는 못한 사람이 많은 것이리라.

저는 우리가 머지 않아 곧 죽는다는 것을 되새겨보는 것 만큼 인생의 커다란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것들 — 남들의 기대, 자존심, 망신을 당하는 것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 이러한 것들은 죽음이란 단어 앞에 너무나 사소해져 버려서 우리가 정말로 중요한 것에 비로소 집중할 수 있게 해줍니다. 죽음의 순간을 떠올려 보는 것은 우리가 이미 잃을 것이 너무 많아서 어쩌면 조심조심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오류에 빠지지 않게 해줍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벌거벗고 사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로 불행한 일일 것입니다.

행복이란 용기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행복하기 위해 열정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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