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의 원칙

Posted by 大山 Sun, 09 Jul 2006 06:18:00 GMT

사람들은 누구나 조금씩은 세상과 타협하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무턱대고 아무 것에나 타협하고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방식은 아닐 것이다. 타협에도 원칙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 번 해보았다.

어떤 이들은 비교적 일찍 주변과 타협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타협을 할 줄 몰라 불필요할 정도로 피곤한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조직이나 사회의 가치에 순응하고 수십년을 성실히 살아가다 어느날 갑자기 다음 세대로부터의 도덕적 비난에 직면하게 된 사람들이나 보다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 노력하다가 주변으로부터 '타협을 할 줄 모른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른다'는 등의 비난을 듣게 된 사람들이나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일 것 같다.

나는 무언가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때 종종 두가지 극단적인 경우를 상정하고 그 접점을 모색하는 방식의 사고를 즐겨하곤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사람의 목숨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나의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사람이 난치병에 걸린 나의 가족이라면 어떠한가? 그 사람이 내가 이름도 들어보지도 못한 가난한 아프리카 국가에 사는 에이즈에 걸린 한 매춘부라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가족의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 장기 이식이라도 서슴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한 매춘부를 위해서 천원 한장이라도 내놓을 사람들은 과연 몇명이나 있을까?

흔히 이러한 종류의 논의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논의 자체를 피해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는 이것이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논의가 활발할 때 우리는 자신의 가치관과 생존이라는 두가지 제약의 틀 속에서 자신만의 타협의 접점을 비로소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협의 점접을 찾아갈 기회가 없다면 우리는 종종 상황이나 주변의 압력에 밀려 원칙 없는 타협을 연달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로인해 형성되는 우리의 삶의 모습이 우리가 전혀 원치 않던 모습이라면 큰일이지 않은가.

학교에서 도덕시간에 가르쳐야 할 것은 '사람의 목숨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니다. 과연 나는 사람의 목숨이라는 소중한 것을 위해서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할 수 있을까라는 보다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바로 도덕 과목의 참된 역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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